인도에서 ‘0’이 발견되고 ‘십진법’을 사용하며 수학이 발달할 때, 유럽에서는 일차방정식, 이차방정식의 해법을 연구하고 있었고 우리나라 조선은 중국 송나라·원나라의 수학을 흡수하여 독자적으로 수학을 발달시켰어요. $\frac{1}{10}$을 ‘할’, $\frac{1}{100}$을 ‘푼’, $\frac{1}{1000}$을 ‘리’라고 하는 것과 같이 소수를 나타내는 용어로 분 $\frac{1}{10}$, 리 $\frac{1}{100}$, 호 $\frac{1}{1000}$ 등의 수학 용어들도 생겨나고 우리만의 계산법도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받아들인 수학이 조선에서 훨씬 발달했어요.
우리나라의 수학자 홍정하와 중국의 수학자 하국주가 수학 대결을 하고 있었어요. 옥의 부피 구하는 문제를 홍정하가 내었는데 하국주가 풀지 못해서 결국 지고 말았답니다. 홍정하는 조선시대의 대나무로 만든 계산기인 산목셈으로 이 문제를 거뜬히 풀었어요. 즉 구의 부피를 구하는 식이 조선 시대에 있었다는 거죠.
이렇게 수학은 문자와 기호를 사용하면서 점차 발달하게 되었고 수학과 수학의 문자, 기호가 발달할수록 우리의 삶도 편해졌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점원이 계산기를 가지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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